유영철 사건일지 3






새벽 4시 45분경, 인적없는 G 마트 뒤 골목에서 웬 남자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걸 봤는데, 곧이어 업소에서


노씨에게 연락이 왔다. 방금 전에 남자가 다시 G 마트 뒤편으로 마사지사를 보내달라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저 놈이다'싶었다. 노씨는 양형사가 단단히 일러준 대로 섣불리 덮치는 대신 양형사에게 전화했고,


양형사는 바로 출발할 테니 인근 순찰지구대에 연락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일렀다.


새벽 5시, 연락을 받은 순찰지구대 김경장이 출동했으나 그 사이 남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낚시꾼이 입질이 약해 조금만 더 하다가 그만 미끼를 뜯긴 상황이었다.


그러나 20분 뒤 남자는 G 마트 앞 길가에 다시 나타났고 김경장과 노씨 일행은 사방을 포위하며 덮쳤다.


남자는 격렬히 저항하며 손에 들었던 무언가를 입에 쑤셔넣었고, 김경장 일행은 손가락을 입에 넣어


삼키지 못하게 한 다음 마침 주머니에 들어 있던 숟가락을 물려서 입안의 물건을 빼냈다.


출장 마사지 업소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지 뭉치였다. 마침 양형사 일행이 도착해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우는 과정에서도 격렬히 저항하는 통에 양형사와 일행은 남자의 이에 물어뜯기고 머리에 받쳤으며


남자역시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으나 큰 부상은 아니었다.



-> 체포된 남자의 이름은 유영철, 절도등 전과 11범이었고 지난 1월 신촌의 한 한 찜질방에서 발생한


소액절도 사건의 피의자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중인 피의자였다.


'이거 완전 도둑놈이군.' 기동수사대 형사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를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유영철이 이상한 대답을 했다.


"마사지사가 맘에 안들어 바꿔달라고 하고 기다리는데 다짜고짜 덤벼들어 붙잡았기 때문에 마사지사는


잘 모르고요. 요새 발생한 서남부 살인 사건 그거 다 제가 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서남부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유영철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뭐 이런놈이 다 있어. 야, 그럼 휴대전화는 어디서 났어?"


유영철은 7월 13일 새벽 4~5시에 길을 걷는데 지나던 차가 창문을 열고 봉투를 버렸고 그 안에


휴대전화와 동전, 시계, 휴지, 생리대, 명함 등이 들어있었다고 대답했다.


7월 12일에도 이 휴대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가 실종되었는데? 당시 유영철이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출장 마사지 업소 전화번호는 여러 개라서 각기 다른 전단지에 적혀있지만, 사실은 모두 한 업소의


같은 전화로 연결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12일에 전화한 업소와 14일에 전화한 업소가 다른 줄 알고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형사들은 일단 유영철이 내뱉는 <SPAN #fff000? BACKGROUND-COLOR: #ff001e; ?COLOR:>이야기</SPAN>를 다 들어주기로 했다.


7월 16일밤 12시 10분경, 횡설수설하던 유영철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취조하던 두 형사는 가혹행위로 인해 징계를 당할까봐 얼른 유영철의 수갑을 풀고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고는


괜찮은지, 물이나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다.


곧 진정된 유영철은 고분고분해졌고 11명을 살해해서 암매장했는데 다 자백할 테니 현장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두 형사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망설인 끝에 "그래. 가보자"며 지원을 받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유영철은 사이에 두고 한 경찰관은 앞장서고 다른 경찰관은 뒤에 섰다가 잠시 서류를 챙겨들기 위해


뒤돌아선 순간, 그 허점을 노린 유영철이 앞선 경찰관을 온 힘을 다해 밀어붙이고 계단을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대부분의 형사들이 야간 출동 중이라 정문까지 달리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지난 1월 찜질방에서 도주했을때와 달리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사람이 붐비는 길로 빠져나가


도주하는데 성공하였다.



-> 유영철이 도주하자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 비상이 걸렸다. 모든 직원들이 소집되어 간단한 교양 후에


유영철의 사진을 담아 급히 만든 수배 전단을 받아들고 거리로, 유영철 연고지로, 역으로, 터미널로 달려갔다.


일단 수배한 죄목은 '절도'였다.


"유영철을 잡아올 때까지는 먹지도, 싸지도, 앉지도 마!"


경장의 고함소리가 대원들의 뒤통수에 꽂혔다.


도주 11시간 만인 11시 40분 영등포역 앞, 눈에 불을 켜고 머리에는 오직 유영철의 얼굴만 담고 있던


기동수사대 김형사의 눈에 낯익은 모습이 들어왔다. 이리저리 살피며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남자,


유영철이었다.  절대로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동행한 의경들에게 지시가 있을때까지는 표정하나 바꾸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유영철이 1미터 안쪽으로 다가오자 김형사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덮쳐 체포되었다.


거짓말과 도주의 명수 유영철은 다시 경찰의 체포망에 걸려들었다.


본부에 무전으로 검거 소식을 전하고 호송에 들어가다, 유영철은 호송되면서도 간질 발작 흉내를 내거나


다리가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는 등 갖은 술수를 다 부렸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 일선 경찰고나들이 도주한 유영철을 검거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동안 서울경찰청에서는 기동수사대에서


보고한 내용들을 토대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검거 당시와 이후에 보인 유영철의 반응과 행동 특성들로


미루어볼 때 출장 마사지사 갈취 여부는 그저 '빙산의 일각' 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미 서남부 연쇄살인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당시 분석을 주도하던 서울 경찰청 수사부장


김용화 경무관은 유영철의 사진에서 왠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혜화동 CCTV 사진 가져와봐!"


비록 뒷모습이었지만, 어머니들은 신생아 뒤통수만 봐도 안나고 뒷모습에도 분명히 개인마다 다른


특징들이 있었다.


"그래. 이거야."


다시 검거된 유영철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제대로 진술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은 수사부장은 직접


유영철을 신문하기로 결정했다.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경찰의 별에 해당하는 경무관으로 거대 서울경찰청


형사들의 최고 우두머리가 직접 피의자 신문을 하겠다니, 위험부담이 매우 큰 모험이었다.


만약 수사부장이 신문해도 별 소득이 없다면 위신이 구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방법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부담을 안은 결정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유영철에게도 전달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영철은 매우 과시욕이 강하고 우쭐대기 좋아하는 심리적 특성이 있는 터라


서울 경찰 최고위 형사 간부가 직접 자신을 신문하러 온다는 사실에 흥분했다고 한다.


한국의 살인 사건 분석과 프로파일링을 주제로 범죄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김용화 수사부장이 차분히


추궁하자 유영철은 이내 자백하기 시작했다.


우선 4건의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했다. 자백 내용이 구체적이고 상세하며


범인이 아니면 모를 <SPAN #fff000? BACKGROUND-COLOR: #ff001e; ?COLOR:>이야기</SPAN>들을 하거나 현장 상황을 정확히 재현해 그리는 점 등으로 보아 범인이 분명했다.


진술에 뒤이은 현장 답사에서도 정확히 피해 주택들을 찾아내고 사건 현장의 처음 모습을 재현해냈다.


11시간 도주하는 동안 증거가 될 만한 물건들을 버렸다는 진술에 따라 수색한 결과 유영철의 하숙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 구석에서 범행에 사용한 해머가방도 발견해 수고했다.


나중에 이 해머의 손잡이 플라스틱 안쪽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다.


이상한 것은 이미 4건의 연쇄살이을 자백한 유영철이 정작 체포된 이유인 출장 마사지사 실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는것이었다. 수사부장은 계속해서 유영철이 소지하고 있던


여성용 발찌와 손목시계, 여분의 휴대전화에 대해 그 출처를 집중 추궁했다.


꿋꿋하게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던 유영철은 마침내 스스로의 거짓말에 지쳐 모두 피해 여성들의


물건들이고 여성들을 모두 살해해서 토막 낸 후 유기했다는 <SPAN #fff000? BACKGROUND-COLOR: #ff001e; ?COLOR:>이야기</SPAN>를 털어놓았다.



-> 2004년 7월 16일 저녁 7시 반. 김용화 수사부장이 직접 앞장 선 수사진은 유영철을 앞세워


사체 1구를 매장했다는 신촌 대학 부근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갔다.


지역 주민들이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등산로를 따라 8부 능선쯤에 이르자 유영철은 한켠에 있는 고목나무


뿌리 밑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저기 파보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표시나 흔적도 없는 뿌리만 남은 고목 나무 밑둥을 들춰내고 흙을 조금 파내자


이내 물컹한 것이 손에 잡혔다. 비닐 봉지에 담은 사체 조각이었다. 모두 18조각. 사체는 이미 심하게


부패해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서울 경찰청 과학수사요원들이 장비를 갖추고 세심하게 비닐을 벗겨낸 다음 사진을 찍고 오랜시간에 걸쳐


조각들을 인체 형태로 맞추어 나갔다. 사체들은 손가락들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였다.


지문을 통한 신원 확인을 하지 못하도록 한 짓이었다.


그러나 감식 요원들의 일만 어렵게 할뿐 잘려나간 손가락 마디에서도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다.


지문을 현출하여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한 다음 가족들과의 DNA 비교 분석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24살의 나이에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와 일자리를 찾던 끝에 전화방 도우미 일을 하던


여성이었다.  유영철이 지목한 다음 장소 역시 신촌 지역의 다른 대학교 인근 산자락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한켠에서는 대형 빌딩 신축 공사가 진행중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었다.


계곡 이쪽과 저쪽. 공사 현장 뒤켠 등에서 모두 11구의 사체들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