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저는 본 작품의 원작 소설도 일본에서 개봉은 물론 한국에서의 개봉도 알지 못했던 어찌보면 베일에 쌓여져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작품이 3월 말일에 개봉했고, 평소 일본 영화를 좋아하던 블로거들이 감상하고 난 후 많지는 않지만 감상 포스트가 메타 사이트등을 통해서 저에게도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감상글이 상세한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직접 두 눈으로 감상하고, 원작 소설까지 읽어보라는 추천형의 권유조가 아닌 무조건 두번 봐라! 라는 식의 명령조의 글들이었습니다. 덕분에 평소 누군가의 추천으로 영화를 감상하지 않는 저였기 때문에 몇번이고 망설였지만 주연이 '마츠 다카코' 란 점이 나름 끌렸고, 그녀의 연기를 한동안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한없이 무거운 본 작품에서 마츠 다카코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도 기대됐습니다.
또 하나 저를 움직인 것은 형법 41조를 소재로 쓰여진 원작 소설이 한일 양국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고, 그런 지지가 실사 극영화까지 이르렀으며, 본 작품을 통해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솔직히 말하면 이웃나라 한국영화에게 밀려있었던) 일본 영화계에 중흥을 이룩할지 모른다는 평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의 작품이라 그런지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 받아 상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이슈가 되지 않았고, 원작 소설이 번역되어 국내 출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에게까지 들리지 않은 것을 보면 베스트셀러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흥행성을 고려할 정도로 재미를 보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모리구치 선생님이 봄 방학을 앞둔 종업식에서 반 학생들이 떠들던 말던 자신이 할 말들을 해나가다가 갑자기 칠판에 목숨 '명(命)' 를 적으며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모리구치 선생 자신에게 벌어진 참혹한 사건을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하는 모습에 작품 속에 학생들은 물론 연출하는 감독이나 스탭들도 숨 죽였을 듯 합니다. 그만큼 마츠 다카코의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에 가까운 감정을 배제한 그녀의 목소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죽이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위압감을 선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의 고백이 마무리 되고, 선생님이란 직업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본 작품의 막이 오르고,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에 들어갑니다.

제게 있어서 본 작품은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만족할 정도로 많은 것을 이야기 해줬습니다. 그동안 일본 형법 41조에 관한 소설, 영화, 드라마를 봐왔기 때문에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예상 됐습니다. 단지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일본 청소년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과 동시에 이런 설정으로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는 일본 창작가들이 바라보는 일본 공교육은 그만큼 무너져 있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일본 학원물에서 이지메는 없어서는 안될 소재이기 때문에 그냥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IT기술이 등장할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그런 세상에서 일본 청소년들만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 뒷걸음질 치고 있는 모습을 볼 떄에는 이제는 기성세대에 들어가려고 하는 제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하더군요. 작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런 청소년들을 바로 잡지 못하고 휘둘리기만 하는 일본의 기성세대, 몇 십년째 바뀌지 않는 일본 법조항을 포함한 사회 시스템을 꼬집음과 동시에 반성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모리구치 선생의 한마디는 이런 제 예상을 농락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믿고는 싶습니다.
아참, 본 작품을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피칠갑의 칼부림이 꽤나 예술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런 장면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중후반부의 감상은 의외로 고달프실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 18禁 액션 영화에 어느정도 단련이 되셨다면 무리없이 지나치실 수 있지만 작품 자체가 워낙 관객의 오감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의외에 내상을 입은 채 상영관을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리 미리 피칠갑 장면들을 보신 후 영화 감상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