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원호연]
개그계의 'KBS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타 방송국 소속 개그맨까지 재시험을 통해 KBS에 입사하는 '콩트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KBS 측은 최근 '2014 KBS 신입 개그맨 공채' 합격 명단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중 SBS 출신 개그맨이 3명이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과거 SBS 개그맨 공채 등을 통해 '웃찾사' 등에 출연해 온 김승혜·이은호·이현정이 재시험을 통해 KBS로 소속을 바꿨다.
특히 김승혜는 2007년도 SBS 9기 공채 출신으로, '웃찾사 대표 미녀'로 불려온 개그우먼이다. 8년 차 개그맨이지만 과감히 신입으로 재도전을 택했다. 이은호는 지난해 '술이야' '잘살아보세' 등 코너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이현정은 '강남엄마' 등에 출연했다. '개콘' 김상미 PD는 "1800명이 지원해 총 14명이 합격했다. 총 3차 전형에서 자유연기·지정연기·면접 등을 거쳤다"며 "SBS 출신이라고 우대한 것도, 불이익을 준 것도 없었다. 오직 실력을 기준으로 선발했다"고 밝혔다.
개그맨들이 타 방송국보다 KBS를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안정된 프로그램을 통해 활발히 활동할 수 있고, 행사비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 '개그콘서트'는 1999년부터 15년동안 750여회의 방송을 내보냈다. 반면 MBC나 SBS 개그 프로그램은 그 사이 폐지와 부활, 프로그램명 변경 등을 겪었다. MBC '코미디에 빠지다'는 지난 6일 마지막회를 내보내면서 한 줄 자막으로 고지를 했을 정도다. 이날 시청률은 2.3%(닐슨코리아). SBS '웃찾사'는 지난해부터 프로그램명을 바꾸며 쇄신을 거듭했지만, 예기치 못한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브레이크가 걸렸다. 최근에는 과거 시청률 30%를 달성했던 이창태 예능국장까지 투입했다. 몇 개의 코너가 호평을 받았고, 4~5%대로 시청률은 올랐지만 아직 화제성은 떨어진다.
3사의 공채 개그맨들이 받는 급여만 따져보면 자칫 'SBS나 MBC가 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다. KBS 신인 개그맨의 경우, 정해진 봉급 없이 회당 출연료 50만원을 받는다. 등급이 올라갈 경우 10만원씩 향상된다. 반면에 MBC는 1년동안만 월 100만원을 지급한다. SBS도 최초 6개월간 200만원을 받는다. 처음부터 '출연료'만 주는 KBS에 비해 SBS와 MBC가 '자리를 잡을때까지' 월급을 주고 있는 셈. 하지만, 개그맨들의 입장에서는 한시적으로 월급을 받다가 '백수'가 되는 것보다 꾸준히 무대에 서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출연료를 챙길수 있는 KBS가 더 나을수 밖에 없다.
한 개그맨은 "'개콘'은 지금까지 큰 부침없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개그맨들도 호봉에 따라 출연료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러나 타 방송국은 무대 자체가 매번 흔들리고 있다. 인지도를 쌓기도 힘들고 연차가 올라가도 출연료는 제자리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SBS의 한 개그맨은 10년차가 돼서야 1년 기준 3000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차이는 행사비에서 벌어진다. 현재 인지도 높은 A급 개그맨들은 대학 축제·지역 행사·돌잔치 등에서 몇 백만 원대의 행사비를 받는다. 하지만 무명 개그맨들은 몇십만원에 그치는 데다가, 한 달에 한번도 행사를 뛰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매주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개콘' 출연 개그맨들과 시청률 2%대 프로그램 개그맨들 사이 행사비 격차는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노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는 '웃찾사', 그리고 21일 새 시즌을 준비중인 '코빠'가 더욱 분발하지 않는 한 이같은 '쏠림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원호연 기자 bitterswee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