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전지현. 전지현 <블러드>












수퍼 루키에서 유일무이한 스타로

어느 덧 11년이다. 전지현이 1998년 드라마 로 대중 앞에 출현한지 말이다. (실제 데뷔는 그보다 1년 전인 잡지 ‘에꼴’의 모델을 통해서였지만 여기서는 연기 데뷔로 제하기로 하자) 에서 남자 주인공 박신양을 짝사랑하는 여고생으로 분했던 18세 소녀는 이듬해 과 드라마 에 출연해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유명한 삼성 마이젯 CF를 찍으면서 대중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청순한 외모와 도발적인 에너지를 동시에 지닌 소녀는 그 이전에는 보지 못한 존재였다. 그때부터 긴 생머리와 긴 팔다리를 가진 전지현의 신화는 시작됐다. 이후 전지현은 한 번도 대중의 관심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지현을 수퍼 루키에서 유일무이한 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2001)다. 영화 속 '그녀'는 한국영화사 뿐 아니라 세계영화사에서도 그 족보를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였다. 흰 피부와 긴 생머리를 찰랑이는 모습이 사춘기 남학생의 꿈에서나 나올법한 '그녀'는 씩씩하다 못해 괴팍했고, 무식할 정도로 정의감이 넘쳤다. 내숭보다는 솔직함이 수동적인 여성성보다는 건강한 젊음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녀'는 여성의 외모와 내면에 대한 오랜 편견을 무너뜨리는, 그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존재였다. 대중은 새로운 인류의 출현에 열광했고 전지현은 스타 중의 스타가 됐다. 영화의 성공 이후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의 여주인공이 '그녀'의 후예임을 자처했지만 아무도 '그녀'와 전지현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실로 의 성공은 엄청난 것이었다. 영화 내적으로는 여성 캐릭터의 전복을 가져왔고 외적으로는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 열풍에 불을 지폈으며 90년대 초반이후 잠잠했던 청춘물의 부활을 이끌었다. 신드롬은 국외로도 퍼져나갔다. 정식 극장개봉을 한 홍콩, 타이, 일본은 물론 심의문제로 극장개봉에는 실패했으나 불법 VCD가 창궐했던 중국에까지 의 돌풍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전지현이 있었다. 이런 성공은 영화를 만든 곽재용 감독은 물론 신드롬의 주인공인 전지현도 그녀에게 시나리오를 건넸을 소속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수년 간 계속되던 의 흥행과 함께 전지현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배우에서 아시아 전체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녀를 위한 범 아시아적 기획영화가 만들어졌고 주성치, 유덕화를 비롯한 한국 바깥의 아시아 배우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로 그녀를 꼽기도 했다. 하지만 전지현이 가장 유명한 배우가 됐을 때 그녀는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배우가 됐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배우

줄리엣과 올리비아 핫세처럼 '그녀'와 전지현의 일체감이 지나치게 맞아 떨어졌던 것일까. 는 극장에서 내렸지만 전지현의 시대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사랑도 현실'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전지현을 만날 수 있었고, 윤기 나는 생머리를 휘날리며 고혹적인 자태를 선보이는 전지현, 모든 남성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장식했던 섹시한 복근의 전지현, 대걸레를 휘두르며 막춤을 추던 전지현, 매끈한 각선미로 유혹하던 전지현, 사랑 때문에 눈물 콧물 다 짜내던 전지현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CF를 통해서였다.










전지현은 15초짜리 CF에서 누구보다 다채로운 이미지를 쏟아냈다. 화려한 스타의 아우라를 보여줌과 동시에 평범한 개인으로서의 일상성도 선보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지현 이미지의 정수만 걸러낸, 아무리 자연스러워 보이는 일상성조차도 예쁘게 꾸며진 15초짜리 광고 영상일 뿐이다. 그곳에는 배우와 대중이 나눌 수 있는 교감도 감동도 없었다. 전지현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그녀를 뒤덮은 것은 신기루 같은 이미지일 뿐이었다. 게다가 상업성이 최우선인 CF는 일회성, 단발성이 숙명인 작업 아닌가. 이미지의 복제와 소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남다른 CF활동이 연기생활에 가장 치명적인 독이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영역에서든 끊임없이 이루어졌던 이미지의 복제행위에 있다. 의 전지현은 기존의 여성성을 뒤집는 신선함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는데 우리는 그 이후 새로운 전지현을 만나지 못했다. CF와 영화 속 수많은 전지현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테크노 춤을 추던 도발적인 소녀와 엽기 발랄한 '그녀'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었다. 물론 전지현은 다음으로 출연한 <4 인용 식탁>(2003)에서 기면증을 앓는 주부를 연기하면서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한 도전은 그녀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더 큰 반작용만 가져왔다. (2004)와 (2006)는 에서 시작돼 CF에서 다듬어진 '스타' 전지현을 한데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철저하게 가려져있던 그녀의 개인 신상과 관련한 루머가 터지면서 견고한 이미지의 성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전지현이 전지현인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현은 여전히 대중이 가장 궁금해 하는 배우다. 타인에 의해서는 복제 불가능한 전지현의 매력은 여전히 그녀가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데뷔 11년 동안 또래 배우에 한참 못 미치는 단 2편의 드라마와 8편의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물론 그것은 '스타' 전지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하고 돌아설 지언정 영화 개봉 때마다 따라오는 연기력 논란은 '배우' 전지현에 대한 대중의 기대이자 관심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지현이 지닌 해외 시장에서의 잠재력 또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의 성공 이후 그녀가 가장 주력한 것은 해외 시장 진출이었다. 홍콩 영화사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기획영화 로 출발한 전지현의 해외 진출은 의 유위강 감독이 연출하고 홍콩 스태프들이 대거 투입된 를 거쳐 프랑스 감독 크리스 나흔이 메가폰을 잡고 프랑스, 일본, 홍콩, 아르헨티나가 합작한 로 이어졌다. 앞선 두 영화는 부족한 완성도와 전지현 이미지의 재탕으로 비평적, 대중적 논란을 가져왔지만 모두 전지현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오시이 마모루라는 거대한 세계 아래 만들어졌기에 근본과 출발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면에서는 두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도 비슷하다. 오시이 마모루가 2000년에 창조한 사야는 분명 전지현과 다른 캐릭터지만 전지현을 통해 실사화 된 사야는 그간 전지현이 보여준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왔지만(오고 있지만) 세 영화는 전지현의 해외 진출 공략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한 세 작품의 완성도가 턱없이 모자랐음을 떠올려볼 때 해외 시장에서 전지현의 가능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지현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 스스로 보여주지 못하면 실체 없는 가능성조차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전지현의 미래를 기대하기 전에 잊지 말아야할 것. 전지현의 필모그래피에는 트레이드마크인 긴 머리를 자르고 맨 얼굴로 카메라에 섰던 (2008)도 있다. 비록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이미지의 성에 갇힌 스타가 아닌 배우 전지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가 보다 먼저 제작에 들어갔으나 뒤늦게 개봉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전지현의 최신작은 기도 하다. 전지현의 다음이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변신 후 달라진 전지현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녀의 도전이 다시 도돌이표를 그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