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할 것 없었던 AV의 시작
AV의 역사라 ... 1981년부터 시작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처음에는 성인영화 여배우나 비닐책(ビニール本)의 모델이 출연하는 일이 많았다. 1984년 데뷔한 '타케시타 유카리/竹下ゆかり' 도 비닐책에서 인기가 높았던 모델이었다. "오렌지 통신/オレンジ通信"(東京三世社)의 1985년도 "독자가 선택한 모델 베스트10' 에서 당당히 1위를 획득. "올나잇 후지/オールナイトフジ", "매번 시끄럽게 합니다/毎度おさわがせします" 등에도 출연했었다.
※ 비닐책(ビニール本) 은 "비닐팩으로 포장되어 매장에서는 책 내용을 볼 수 없는 포르노 사진집" 을 말한다. 일반 매장 판매의 성인 대상 잡지와 비교해 음부 노출 정도가 높고 빈번해 미성년자가 서서 읽을 수 없도록 한 것. 그래서인지 성인만이 구입할 수 있다보니 그 당시에는 포르노 사진집을 비닐책이라 부르게 만드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1980년대 무렵까지 주로 유흥가 및 번화가에 있는 일반 서점이나 성인 용품점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좌측은 타케시타 유키리의 비닐책,
우측은 AV여배우 시절 아리스JAPAN 작품
'나카이 요우코/永井陽子' 는 1985년에 데뷔. 처음 알몸이 되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촬영을 중지시켰을 정도의 순정파이다. "비디오 프레스/ビデオプレス"(大亜出版) 의 "제 5 회 비디오 퀸 콘테스트" 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을 했고, 추후에는 무라니시 토오루 감독의 하드한 작품을 제대로 맛볼 정도로 진성 AV여배우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청순한 외모였지만 나카이 요우코의
AV여배우 후반부 작품은 너무나 과격했다
AV업계의 '아이돌' 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한 해는 1986년이다. 초대 AV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바야시 히토미/小林ひとみ' 가 등장함과 동시에 대히트. 책 버전으로 발매되었던 작품인 '다 탈 때까지/燃えつきるまで" 는 당시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1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또한 당 해에는 '아소 미오/麻生澪' 와 같은 미소녀 노선의 아이돌이나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무라니시 토오루 감독이 데리고 있던 '사라 이츠키/沙羅樹' 등도 데뷔. 소프트 노선의 '시노미야 토모코/篠宮とも子' 도 인기를 모았다.
지금이라도 미모 하나 만큼은 먹혔을
'고바야시 히토미'
귀여움과 예쁨이 적절히 조화되었던 미소녀
'아소 미오'
소프트 노선을 대표할만한 외모이기도 했던
'시노미야 토모코'
무라니시 감독에 총애를 받았던 '이츠키 사라'
AV 아이돌의 태동
그리고 1987년은 AV아이돌의 해였다. 요즘은 베이글이라 불리는 동안의 거유 타입의 AV아이돌의 왕도 유형의 원조인 '타치하라 유카/立原友香'. 성인물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처럼 느껴지는 '카츠라기 마야코/桂木麻也子', 점잖은 것 같은 얼굴과 함께 육감적인 몸매의 불균형이 매력인 '마에하라 유코/前原祐子', 귀여운 소녀 같은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지저스 밤과 다람쥐 슈퍼스타/ジーザス栗と栗鼠スーパースター' 와 같은 하드물도 찍어낸 '고토우 사키/後藤沙貴' 과 큰 엉덩이로 귀염 떨던 '아즈마 키요미/東清美', 그리고 Racco조는 아이돌 그룹으로 레코드 데뷔까지 완수한 '사이토 유리/斉藤唯' , '사에지마 나오/冴島奈緒' , '하야마 미도리/葉山みどり'. 오냥코 클럽 붐이 과열되던 때였기 때문에 AV아이돌의 팬들 역시 함께 고조되어 그녀들은 학교 축제 등에 캐스팅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타치하라 유카
카츠라기 마야코
마에하라 유코
고토우 사키
아즈마 키요미
사이토 유리
하야마 미도리
사에지마 나오(아래)
오냥코 클럽
1988년 화제의 중심은 '토요 마루/豊丸' 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여자였다. 큰 입을 살린 진공 펠라치오, 야수의 포효 같은 신음 소리, 욕심에 쾌락을 추구 그 모습은 지금까지의 일본의 여성관을 크게 바꾸는 것이었다. 그 후 그녀와 같은 유형의 AV여배우가 차례차례로 등장. 공전의 음란 붐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곧 이것은 2000년대 초반의 치녀 열풍으로 이어진다. 물론 '마츠모토 마리나/松本まりな' 와 '효우카 마코/日向まこ' 와 같은 청초한 아이돌계도 건재했지만, '무라키미 레나/村上麗奈', '아유카와 마사토/鮎川真里', '고토우 에리코/後藤えり子' 와 같이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은 성인 여자의 매력을 발하는 여배우들이 하드물에서 본색을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외모는 미소녀 계열인데 펠라치오를 잘하거나 시에는 드물었던 물총을 쏘아대는 '나카무라 리사' 같은 여배우도 등장해 AV는 여자가 귀여운 외모의 아이돌계만 팔리는 것이 아닌 귀여우면서 하드한 것까지 소화해 내는 것이 당연한 시대로 변하게 된다.
토요 마루
마츠모토 마리나
효우카 마코
무라카미 레나
아유카와 마사토
고토우 에리코
아이돌이란 태풍 속에서 순풍의 거유 붐
쇼와에서 헤세이로 연호가 바뀐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AV가 하나의 피크를 맞이한 시기라고해도 좋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움직임은 '마쓰자카 키미코/松坂季美子' 의 등장과 더불어 그에 따른 '거유 붐' 이었다. 그때까지 D컵 정도를 거유 라고 불렀던 일본의 AV업계에 110cm G컵 충격 덕분에 그 이전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녀에 버금가는 거유 여배우를 찾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거유붐을 타 수 많은 거유 여배우가 등장했다. 투명한 흰 피부가 매력이었던 '쿠도 히토미/工藤ひとみ' 와 높은 신장에 나이스바디였던 '쇼우지 미유키/庄司みゆき' 도 E컵의 큰 가슴으로 인기를 모았다.
거대한 자연산의 무브먼트는 충격 그자체!
'마쓰자카 키미코'
'쿠도 히토미'
나이스바디보다 얼굴에 먼저 눈이 가는
'쇼우지 미유키'
물론 거유만이 선전했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팔리고 있는 전설의 미소녀 '호시노 히카루/星野ひかる' 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면 긴 활동을 보여줬던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하야시 유미카/林由美香' , "ポンポコピー" 라는 애칭으로 사랑 받았던 '오자와 나미/小沢奈美', 그야말로 자체발광이란 잘 어울렸던 외모를 지녀 열광적인 팬을 거느렸던 '모리카와 이즈미/森川いづみ' , 럭키 이케다와의 결혼(금방 이혼)으로 화제가 됐던 '아오야마 치하루/青山ちはる' 등과 같은 슬렌더 체형의 미유 아이돌이 연달아 데뷔했던 것도 이 시기였던 것이다.
※ "ポンポコピー" 는 우리나라로 치면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 와 같이 장수 하기 위해서 역대 왕들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됐는지는 확실친 않습니다.
전설의 미소녀라 불려도 무방할 수준의 '호시노 히카루'
하야시 유미카
오자와 나미
자체발광 사진은 전부 18禁 '모리카와 이즈미'
아오야마 치하루
또한 무라니시 토오루 감독이 이끄는 다이아몬드 영상은 '마쓰자카 키미코/松坂季美子' 브레이크에서 황금기를 맞이한다. 안경으로 매출을 올렸던 '노자카 나츠미/野坂なつみ', 미스 일본의 경력의 '히미코/卑弥呼', 동안인데 겨드랑이에 털을 기르고 있는 언밸런스가 매력적이었던 '코바토 미오이/小鳩美愛' 등 인기 여배우를 잇달아 배출했다. 그러나 버블 붕괴의 영향 때문인지 1992년 사실상 파산의 쓰라림을 맛보게 됩니다.
노자카 나츠미
히미코
코바토 미오이
그 다이아몬드 영상에도 한때 재직했던 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중 한명이 바로 '사쿠라기 루이/桜樹ルイ' 이다. CD 데뷔와 NHK 드라마에도 출연한 연예인이라는 잘 팔리던 미소녀였지만, 진성 하드물에서의 섹스에서도 적극적. 이후 AV아이돌상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의 수많은 모델 중 한명이 된다. 출연작 중 "금각사2/金閣寺2"의 대담한 섹스씬은 당시 최고의 아이돌로서는 파격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격렬했다.
사쿠라기 루이
금각사2
이외에도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인상적인 거유 여배우 '타치바나 마스미/橘ますみ' 와 스트리퍼와 누드 모델로 오랫동안 활약한 '셈바 유키/仙葉由季', "악어와 한 여자" 로 화제를 모았던 '카이만 히토미/貝満ひとみ' 등이 데뷔 바로 백화요란해졌다.
타치바나 마스미
셈바 유키
카이만 히토미
버블 붕괴로 불황의 물결에 습격당한 90년대 초반. AV업계에서도 저예산의 제작비로 촬영할 수 밖에 없는 기획물의 기세가 더해갔고 '칸파니 마츠오/カンパニー松尾(V&Rプランニング)' 와 '바쿠시시 야마시타/バクシーシ山下(V&Rプランニング)' 와 같은 새로운 감각의 감독이 각광을 받게된다. 참고로 '칸파니 마츠오' 는 아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하메도리/ハメ撮り' 란 장르를 AV업계에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3명의 감독(아오이 토우키/葵刀樹, 쿠도 레이/工藤澪) 중 한 명으로 그를 거쳐간 여배우들은 그와의 섹스 만큼이나 작품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칸파니 마츠오 감독 / 바쿠시시 야마시타 감독
그런 중에서도 인기를 모은 AV아이돌이라고 하면 '아사쿠라 마이/浅倉舞' 와 '사오투메 미키/早乙女美紀' , '미즈사와 사키/水沢早紀' 같은 우아한 아가씨 타입과 '미사토 마리/美里真理', '오카자키 미오/岡崎美女' 같은 럭셔리할 것 같은 미인 타입이었다. 천박한 것을 꺼리지 않는 날라리 여고생 붐의 반동으로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은 타입의 미인이 미인 답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다! 라고 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탓일지도 ...
아사쿠라 마이
사오토메 미키
미즈사와 사키
미사토 마리
오카자키 미오
또한 1991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길가메쉬 나이트/ギルガメッシュないと"(tv tokyo계) 등 심야 프로그램에서 AV여배우를 기용하는 일이 잦아 그 출연 덕분으로 인기란 불씨에 점화가 되는 일이 많아진다. 해당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기를 얻었던 여배우들은 '아사미야 준코/麻宮淳子', '야자와 요우코/矢沢ようこ', '키타하라 리나/北原梨奈' 등이 있었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던 '히요시 아이/日吉亜衣', 없는 가슴 모아 모아 가슴골을 만들었던 '미즈키 마리/観月マリ' , 모리타카 ◯마을의 닮은꼴로 평판이 높았던 슬렌더 체형의 '미우라 아이카/三浦あいか' 등도 이시기에는 매우 중요한 AV여배우였다.
"길가메쉬 나이트/ギルガメッシュないと" 하면 여러분들 중 혹시 생각 나실만한 것은 아마도 얼마 전 자살한 이이지마 아이가 T백을 입고 뉴스를 진행했던 코너나 알몸 에이프런으로 요리를 했던 '야식 반자이' 일 겁니다. 읽으신 그대로 1991년 시작해서 1998년까지 방송했을 정도로 대인기였고, 대부분의 시청자가 취침을 했던 자정 시간대에 방송을 했기 때문에 표현에 대한 수위는 우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고 일본의 버블 시절이기도 했어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예를 들면 '짱구는 못말려/크레용신쨩'에서도 엄마 봉미선이 집을 비우면 아빠 신형만이 아들 신짱구와 함께 늦은 자정 함께보면 프로그램이 바로 그 당시 일본 공중파, 위성파, 케이블파를 주름잡던 성인 프로그램들이었고, 그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프로그램이 바로 '길가매쉬 나이트' 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도 더해져 저학년 아이를 자식으로 둔 학부모들이 해당 방송국에 '크레용신쨩' 방송 금지를 요청하기도.
아사미야 준코
야자와 요우코
키타하라 리나
히요시 아이
미즈키 마리
미우라 아이카
인디 메이커의 약진
1996년에 데뷔한 '코무로 유리/小室友里' 는 1990년대 후반의 AV여배우를 대표하는 존재가 된다. 자세한 내용은 "메이커 횡단 베스트! 코무로 유리 8시간" 본인의 라이너 노트를 참조해 주었으면 하고 h.m.p 전속 여배우로서 데뷔, AV여왕의 이름을 쟁취한 상태로 이후 인디 메이커에서도 활약했다. 총 4년 간에 걸친 활동은 1990년대 후반의 AV장면의 움직임과 훌륭하게 부합한다.
코무로 유리
이렇게 1990년대 중반에 인디 메이커의 약진이 있었다. 그때까지 AV와 비데륜의 심사를 받는 것은 대여점용 VHS(초기에는 베타도)라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90년대에 들어 셀(판매) 전문 AV들도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셀용 작품은 비데륜의 심사를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사진집이나 잡지 화보 등에서는 사실상 해금되어 있던 체모를 가리지 않고 보여주고 있었다. 초기에는 페티쉬 색의 강한 매니 악한 작품이 메인이었지만, 점차 그 기세는 더해가면서 일반 AV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 1990년대 일본 공중파 TVCM 중 목욕 용품의 경우 광고 모델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상의 노출을 할 경우엔 체모를 밀어낸 후 해야했을 정도로 체모에 대한 심의는 상당히 심했습니다. 심지어 여자 광고 모델의 유두나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체모 만큼은 무조건 막은 것을 보면 일본의 영상물에 대한 심의는 자체적이라기 보다는 해외 선진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렌탈계의 AV에서 활약한 여배우가 인디즈로 옮겨 더 하드한 내용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흐름이 확립되던 시절이었다. 위의 코무로 유리도 그렇고, 1997년 데뷔한 '카나자와 분코/金沢文子' 1999년 데뷔한 '히로스에 나오/広末奈緒' 이나 '아유카와 아미/鮎川あ' 도 그 패턴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이 시스템이 정착됐다고 무방할 정도로 렌탈 전문 AV메이커의 전성시대였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여배우 입장에서 보면 렌탈 데뷔 후 다시 셀 데뷔와 또 한번의 렌탈 데뷔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AV여배우의 활동 수명을 연장할 수있다는 장점도 있었다는 것이다.
카나자와 분코
히로스에 나오
아유카와 아미
그러나 처음부터 인디 메이커에서 데뷔하여 순식간에 톱 아이돌이 된 것은 1998년에 데뷔한 '모리시타 쿠루미/森下くるみ' 였다. 천진난만하고 순진해 보이는 소녀로 등장한 그녀는 이후 10년간에 걸쳐 활약했고 거칠 것 없이 모든 것을 탐하는 섹시한 성인 여성으로 성장해 갔다. 그것은 인디 AV 성장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였다. 그 세력은 확대를 계속했고 2000년대 중반 마이너한 이미지가 남아 있었던 '인디' 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추후 '셀' 로 통일하게 되었으며 업계에서도 더이상 구분해 나누려 하지 않았다.
모리시타 쿠루미
풍속 출신 AV여배우의 출현
이야기를 1990년대 후반에 되돌리자. 그 당시 공전의 풍속 붐이 일어났다. 인기 풍속녀들을 '후도루/フードル' 라고 불렀는데, 그녀들은 AV여배우를 고사하고 오프라인 잡지를 통한 그라비아에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여성들 중에는 AV데뷔한 경우도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도 풍속 출신의 AV아이돌은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신의 출신을 지우려고 노력했었기 때문에 업계는 몰라도 소비자들은 그녀들이 과거 풍속점 출신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풍속 붐 이후 굳이 그것을 숨기지 않고 데뷔하는 여성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또 늘어나기도 했었다. 핑크 살롱에서 카리스마적인 아이돌이었던 '코우츠키 야야/光月夜也' 과 '이메쿠라/イメクラ' 에서 치녀 플레이를 갈고 닦았다는 '타카노 란/高野らん' 가 등장. 과연 그녀의 기술에서는 다른 여배우를 압도해버릴 정도로 능숙했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서 증명했다.
※ '후도루/フードル' 는 풍속점 아이돌를 칭하는 단어로, 후도루로 불리는 풍속녀들은 출근하자마자 예약이 풀로 채워질 정도이고 심한 경우에는 수개월까지 선약이 채워질 정도로 인기를 모으는데 그러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할 대전제는 서비스의 질이 남달라야하고, 비주얼 역시 높아야 한다. 망가 '사채꾼 우시지마' 에 등장하는 안나의 비주얼과 미즈키의 서비스를 합쳐놓은 케이스가 바로 '후도루' 라 이해하면 될 듯. 다만 최근에는 원하는 금액 만큼만 돈을 모으면 바로 그만둬버리기 때문에 풍속 붐이 일었던 1990년대처럼 '후도루' 라 불릴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는 풍속녀들은 현실적으로 나올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풍속점에서 후도루를 노릴 정도로 오랜 기간동안 일할 바에는 차라리 AV메이커에 전속 데뷔해 높은 계약금과 편당 촬영비를 받는게 훨씬 더 이득이라는게 업계의 정설.
※ '이메쿠라/イメクラ' 는 이미지클럽의 준말로 여성 종업원이 남성이 원하는 각종 코스튬을 입고 성적인 행위를 서비스하는 풍속점을 말한다. 당연히 원정녀 시리즈로 화제가 된 데리헬 마냥 섹스를 서비스하지 않으며 유사 성행위 역시 금지하는 경우도 많아 이런 점들을 미리 알지 않고 간 한국 유학생들이 환상과 다른 서비스에 목돈만 날리고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근 5~10년 사이에 국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유사 성행위 업소들인 강남 대딸방, 키스방, 코스프레방, 인형방 등이 이미지클럽 등을 알려진 일본의 풍속을 들여온 것이다. 주변 제 또래의 경우 1990년대 일본 영화 그중에서도 로망 포르노라 불리던 핑크물이나 AV작품을 봐왔던 이들은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이미지클럽' 을 가보겠단 계획을 세우던 고딩들이 좀 있었을 정도이니 이미지클럽에 대한 일본외 국가나 대륙의 사람들의 섹스 판타지가 어느정도였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미지클럽에 들어가기 위해선 일본어를 능숙하게 해야하고 외국인들 중 한국인들은 동남아인들과 더불어 출입 금지라고 하는 도시전설도 존재했다) 그만큼 일본의 1980~90년대의 모습은 한국의 2000년대 이후라고 말할 정도로 발전했었기 때문에 풍속에서 파생된 각종 업종들이 이제서야 한국에 들어온 것 역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춤추는 대수사선' 이나 영화 '도쿄타워(18禁)' 에서도 이미지클럽이나 이미지클럽녀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코우츠키 야야
타카노 란
그밖에 샤프한 외모의 미소녀 '와카나 세나/若菜瀬奈' 와 '쿠사나기 쥰/草凪純' 이란 이름으로도 맹활약했던 くびれの女王 '카노우 미즈하/加納瑞穂', G컵 거유와 애니메이션 목소리로 인기를 끌었던 '시이나 마이/椎名舞', 앳된 로리계의 '스즈키 쿠루미/鈴木くるみ', 과자계 잡지 모델 경력으로 인기를 끌었던 '아오이 미노리/葵みのり' 등이 활약. AV여배우는 질 · 양 모두 크게 향상되어 갔다.
와카나 세나
카노우 미즈하
'카노우 미즈하' 란 이름으로 먼저 AV여배우로 데뷔했지만 바로 은퇴해 그라비아 아이돌로서 맹활약하는데 그때에는 '아사미 나루오/浅海 成亜' 란 이름을 사용했고, 이후 그라비아와 AV여배우를 병행하기 위해서 재데뷔한다. 이후 '쿠사나기 쥰/草凪純' 이란 이름으로 개명해 AV여배우로서의 인기는 물론 병행했던 그라비아나 TV출연까지도 같은 이름을 사용해 성공적인 연예계 데뷔를 이룬다. AV여배우 은퇴 후 스트립과 V시네마과 연기자에겐 왠지 어색할 수 있는 일본 프로레슬링에도 선수로서 참전할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을 보인다. 그녀의 몸매를 보면 거유와 잘록한 허리 만큼이나 근육으로 이루어진 사지와 복근을 보면 이런 정력적인 경력이 납득이 갈 것이다.
시이나 마이
스즈키 쿠루미
아오이 미노리
기획 단체 AV여배우의 붐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난 것이 바로 기획 단체 여배우 붐이다. '나가세 아이/長瀬愛', '츠츠미 사야카/堤さやか' 등의 기획 여배우가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름도 표기되지 않는 아마추어 역이었는데 "그 아이 귀엽던데!" 라면서 팬들이 생기기 시작, 곧 단체 여배우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게 되었다. 제작사나 잡지를 통한 홍보로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고조된 붐이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매우 흥미롭게 본 모양이다. 2001년에 AV정보지 "오렌지 통신"(東京三世社) 연간 AV 아이돌상을 일반적으로는 단체 여배우들 사이에서 수상했겠지만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나가세 아이에게 상이 돌아간 점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기획 단체 여배우 붐의 상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원래는 단체와 기획 달랑 둘로만 나뉘어 있던 AV여배우 카테고리 사이에 기획 단체(통칭 '기카탄/キカタン')이라는 새로운 세그먼트가 추가된 것은 바로 그녀들의 공적이라 말할 수 있다.
나가세 아이
츠츠미 사야카
기획 단체 여배우 붐은 여동생 계라는 로리 계 여배우가 중심이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숙녀(熟女) 붐도 존재 했었다. '카와나 마리코/川奈まり子' 를 비롯한 '미숙녀/美熟女' 라 불리던 여배우들이 대인기를 구가한다. 그때까지는 마니악한 장르라고만 여겨졌었지만 숙녀계 여배우들의 등장으로 매우 일반적인 AV장르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기존의 "아줌마" 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성숙한 좋은 여자" 라고 하는 미숙녀 타입의 여배우들이 차례차례로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숙녀 열풍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지속되었고 현재는 가장 안정된 인기 장르로 정착하고 있다. 덧붙여서 현재 최고 숙녀계 여배우는 '카자마 유미/風間ゆみ' 로 1990년대 말기부터 활약을 계속해올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이다. 카자마 유미의 경우 dmm 랭킹 TOP.100 에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일반적인 소비자도 팬도 많은 베테랑 여배우들 중 한 명이다.
카와나 마리코
카자마 유미
대형 AV여배우의 등장
이외에도 2000년대 중반에는 장기적인 활동을 하는 대형 AV여배우가 데뷔 러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선 2000년 부터 4년간 활동 후 탤런트로 변신한 '오이카와 나오/及川奈央' 는 시대를 대표하는 섹스 심볼이라고 할 정도의 인기와 지명도를 누렸다. 그녀와 동시기에 데뷔한 여배우 중 빼어난 미모와 미각의 '와타세 아키라/渡瀬晶', 6년간 톱 여배우의 자리를 지켰던 '하야사카 히토미/早坂ひとみ', 작은 몸으로 꽤 하드한 작품에도 도전했던 '코이즈미 키라리/小泉キラリ', 5년 간의 활동 끝에 8개 메이커에서 은퇴 작품을 동시 발매하여 업계를 놀라게했던 '난바 안/南波杏' 등이 있었다.
오이카와 나오
와타세 아키라
하야사카 히토미
코이즈미 키라리
난바 안
이미 그 인기는 AV업계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이 되어버린 '아오이 소라/蒼井そら' 나 '요시자와 아키호/吉沢明歩' 처럼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의 여배우도 이시기의 데뷔했다는 것이다.
아오이 소라
요시자와 아키호
또한 그 아름다움은 역대 최고라고 하는 '미타케 료코/美竹涼子', 정갈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누나계 여배우 '마츠시마 카에데/松島かえで', 흰 피부와 슬렌더 타입의 바디가 매력적인 '오자와 나호/小沢菜穂', 압도적인 색녀의 모습을 보여준 '카시와기 리카코/柏木りかこ', H컵 폭유의 '하루나 마이/春菜まい', 강모/剛毛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사와구치 아스카/沢口あすか', 요염적인 미소녀 '고토 히카루/古都ひかる', 어른스러운 청초를 보여준 '미즈모토 유우나/水元ゆうな', 대형 여배우들만이 데뷔했던 이 시기를 바로 'AV골든어스' 라 부른다.
미타케 료코
마츠시마 카에데
오자와 나호
카시와기 리카코
하루나 마이
사와구치 아스카
고토 히카루
미즈모토 유우나
동시에 VHS에서 DVD로 완전히 전환하면서 비데륜계 메이커도 렌탈보다 셀에 비중을 두기 시작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AV업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디지털 모자이크 등의 수정 최소화와 수록 시간 장대화 등이 AV의 찍는 방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즉 소비자가 보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가 되어 갔던 것이다. 남자배우의 페니스가 제대로 삽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하메시로/ハメシロ" 가 주목받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실전은 일체하지 않는다" 고 공언했던 고바야시 히토미처럼 AV초기의 인기 여배우는 가짜 삽입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허용되지 않았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한 듯 안 한 듯 보이는 모자이크 너머로 바로 알아 버리기 때문이다.
※ '하메시로/ハメシロ' 는 남녀 배우가 FUCK 시 자신들의 성기가 삽입되는 부분을 모자이크로 가린다고 하더라도 신뢰를 줄 수 있는, 또는 보여질 수 있는 체위로 연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카토 타카의 말 그대로 지금의 AV는 리얼이 아닌 판타지 그자체! 라는 말이 명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하메시로나 기리기리의 요구는 당연했던 것이다. 하메시로가 요구된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초창기 AV작품에서는 한국의 에로비디오나 일본의 로망포르노에서처럼 남녀 배우가 실제 FUCK을 즐기는 것 마냥 성기를 일부러 노출 시키지 않는 체위로 연기를 하다가 AV업계가 점점 대중화 되면서 노출도나 작품성에 대한 요구가 강렬해지고 업계의 경쟁도 심했기 때문에 하메시로 뿐만 아니라 모자이크의 크기나 범위도 메이커별로 줄어들거나 투명도가 높아지는 일이 벌어진다. [관련 포스트]
AV아이돌이 한 소녀의 꿈이 되는 시대가 도래!
2000년대 중반부터 AV여배우의 외모 수준은 자꾸자꾸 올라 갔다. 더 이상 여느 아이돌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사미 유마/麻美ゆま', '미히로/みひろ', '리오/RIO', '니시노 쇼/西野翔', '키시 아이노/希志あいの', '키자키 제시카/希崎ジェシカ', '요코야마 미유키/横山美雪', '루카와 리나/瑠川リナ' 등이 TV에서까지 인기인 것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녀들을 동경해 팬이 된 소녀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는 그녀들이 AV여배우라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키사라기 카렌/如月カレン' 과 '니노미야 사키/二宮沙樹' 이상의 외모를 가진 아이돌이나 탤런트가 얼마나 있을까. 실제로 그라비아 아이돌이었던 '카야마 미카/佳山三花' 나 대형 학원의 이미지 걸을 했던 '나나우미 나나/七海なな' 처럼 연예계에서 실적을 가진 탤런트가 AV여배우로 데뷔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었다. AV업계와 연예계의 울타리는 점점 완고하게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AV에 출연하고 있으면 "왜 그렇게 귀여운데 TV에 나오지 AV에 나오지?" 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귀엽고 예쁜 여배우가 아니면 AV를 내주지 않는 게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아사미 유마
미히로
리오
니시노 쇼
키시 아이노
키자키 제시카
요코야마 미유키
루카와 리나
키사라기 카렌
니노미야 사키
카야마 미카
나나우미 나나
그리고 그냥 외모가 좋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AV여배우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사히나 유이/朝比奈ゆい', '타케우치 아이/竹内あい', '아이다 유아/あいだ ゆあ' 와 같은 나이스바디도 필요충분조건이다. 더이상 G컵이라고 해서 거유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거유의 장애물은 해마다 높아지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진행되고있다. '나오/nao.' 같이 부카케에 특화된 AV아이돌도 있었다. 그녀는 데뷔작에서 하드한 부카케와 곳쿤을 선보였다. 2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수록작에서는 "천연 곳쿤 소녀/天然ごっくん少女" 로 대량의 정액을 원샷했다. 슬렌더한 체형과 장신 그리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로 "최강의 색녀/最強の痴女"의 칭호를 가진 '타치바나 리코/立花里子' 는 색녀 붐을 이끌었다. 과도한 페로몬을 터트렸던 '마츠노 유이/松野ゆい' 는 2007년 "오렌지 통신" 연간 AV여배우 상을 수상했다. '모리노 시즈쿠/森野雫' 란 이름으로 로리타 데뷔한 후 개명해 M 전문 여배우로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있는 '카와카미 유우/川上ゆう', 6년 동안 오로지 로리타인 '츠보미/つぼみ' 도 있다. 그리고 패셔너블한 걸 노선을 걷는 '아스카 키라라/明日花キララ' 등 팔리고 있는 여배우는 각각 강한 개성이 필요한 것이다. '미네 나유카/峰なゆか' 처럼 은퇴한 후 서브 컬쳐 작가, 만화가로 성공한 변종도 존재한다.
아사히나 유이
타케우치 아이
아이다 유아
나오
타치바나 리코
마츠노 유이
카와카미 유우
츠보미
아스카 키라라
미네 나유카
AV의 역사, 즉 AV여배우의 역사이기도하다. 모니터에서 빛나는 그녀들이 있었기 때문에 AV도 여기까지 유저에게 지지를 받아 온 것이다. 30년 AV의 역사에서 엄선된 100명의 스타들의 아리따운 자태를 차분히 즐기면 좋겠다.